2018년 11월 10일 토요일

분석 #9. 글로벌 SW Outsourcing 시장, 분석과 영어 역량


필자가 15년 전에 "대한민국에는 소프트웨어가 없다" 라는 책을 썼다. 그동안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지금은 소프트웨어가 있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어본다. 변한 것이 없다고 대답한다. 마치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 같지만 잘 보면 하나도 잘 된 것이 없다. 마치 "15년 전보다 세상이 행복해 졌습니까?" 라고 묻는 것과 같다. 문명은 엄청난 발전을 했지만 정신적인 행복은 변한 것이 없다. 아마 더 불행해 졌을지도 모른다. SW도 마찬가지이다. 수 많은 새로운 도구와 기술이 생겨났지만 그런 것은 이 세상 누구나가 다 사용하는 것이다. 즉 경쟁력에서 도움이 되지도 않고 그냥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한 도구가 생긴 것 뿐이다. 그런 것을 사용한다고 더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때에 따라 편리하니까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유행에 따라 잠깐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진짜 중요한 도구들은 이미 필자가 경험한 40년 전부터 존재해 왔다. 예를 들어 소스코드관리 시스템이나 이슈관리 시스템 같은 것이다. 많은 진화를 거듭해서 편리한 점이 많아 졌지만 그 사상에는 큰 차이는 없다. Git이나 Jira가 없었던 과거에도 다른 도구들이 있어 왔고 똑같이 사용해 왔다. 글로벌 대기업들은 내부적으로 그런 도구들을 자체 개발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상은 변하지 않았다.

SW 역량을 평가할 때 여러가지 관점이 있지만 여기서는 SW Outsourcing 중에서도 SW 개발 Outsourcing 역량에 대해서 얘기하기로 한다. SW 개발 Outsourcing,은 국내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약 70%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30%는 자체 제품이나 인프라 개발이다. 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SW 산업이 3D 업종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SW에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결국은 분석역량이 최초의 원인으로 도달하게 된다. 그 다음은 설계 역량이 중요할 텐데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숫자로 표현하자면 분석에 비해 1/10 정도의 중요성이다.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위해 사용했지 컨설팅업체라면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디에도 이런 근거는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설계를 귀신같이 한다고 해도 10% 밖에 안되는 것을 잘하는 것이다. 난이도도 1/10 정도이다. 바둑을 두는데 프로가 되는 것이 아마추어의 최고가 되는 것과는 열 배 이상 더 어렵다. 분석을 잘하는 것과 설계를 잘하는 것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관계라고 비교할 수 있다.

전세계 SW 개발 Outsourcing business는 몇십년 전부터 cross-border라고 국가의 경계를 넘어 진행되어 왔다. 거리가 먼 나라인 경우 Offshore, 몇시간 정도 거리를 near-shore, 바다를 넘어기지 않고 가까운 경우 on-shore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전 세계 SW 개발 Outsourcing business에서 인도와 베트남이 가장 중요한 나라이다. 인도는 미국에게서 배웠고 베트남은 인도에게 배워서 따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베트남이 인도에 비해 10년 이상은 뒤떨어져 있다고 본다. TCS나 Wipro같은 인도의 글로벌 Outsourcing회사는 인건비도 비싸지만 이제는 지저분한 고객과는 상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 인도 회사들이 떠나는 자리를 베트남이 메꾸기 시작해 결과적으로 인도와 베트남이 이제는 전 세계 Outsourcing 시장의 양대 산맥이 되었다.

인터넷에서 "Software Outsourcing India", "Software outsourcing Vietnam"과 "Software Outsourcing Korea"로 비교해 보기 바란다. 국내 SW의 70%를 차지한다고 하는 국내 개발 회사들은 글로벌에는 존재가 전무하다. 반대로 Vietnam에 관한 자료는 연구논문이 있을 정도로 수를 셀수 없이 많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SW 회사라고 하면 FPT Software인데 개발인력만 만명이 넘는다. 고객의 대부분이 미국, 일본, 유럽의 글로벌 회사들이다. FPT 이외에도 규모는 작지만 수천명의 개발인력을 가진 회사들이 수십개가 넘는다. 제조업이 많지 않은 베트남의 국내 사정상 국내 고객은 극히 적다. 모두 처음부터 외국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생겨났다. 글로벌 회사들을 상대로 10년 이상을 개발해 왔기 때문에 엄청난 기술과 함께 소프트웨어 공학 역량도 축적이 되었다. 베트남의 중요한 외화벌이 산업이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인도의 회사들이 피하는 "지저분한 고객"은 바로 주먹구구식으로 계약을 하는 회사들이다. "주먹구구식"과 똑같은 단어가 "분석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회사가 10페이지 짜리 스펙을 적을 때 글로벌 회사들은 100페이지 짜리 스펙을 적는다. 그런 두 회사가 계약을 하거나 파트너십을 얘기할 때 잘 되지 않을 것은 너무 당연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이다. 프로는 프로를 찾아서 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도의 회사들이 국내 회사들을 상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국내 회사들을 베트남 회사들은 지금은 기꺼이 고객으로 상대해 준다. 워낙 인건비가 저렴하니 위험을 감수해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갑질이라고 하는 "고객의 사양 변경하기"를 당해도 자존심 버리고 저비용으로 버틸 수 있다. 자존심이 없거나 몰라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건비 비싸고 마진이 작은 국내 SI 회사들은 버티기 어렵다.

베트남의 Outsourcing 회사들은 미국, 일본, 유럽의 고객들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국내 회사들의 차이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또 베트남이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영어 역량이다. 내가 만났던 베트남회사의 모든 임원들은 영어를 실리콘밸리에서 만나서 회의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편안하게 구사한다. FPT Software의 경우 모든 직원들이 email과 문서는 영어로 적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일년에 한 번씩 모든 임직원이 예외 없이 TOEIC 시험을 봐서 점수를 공개한다. 또 FPT가 설립한 베트남의 최고 기술대학 중의 하나인 FPT University의 입학 조건이 TOEIC 800점이다. 국내에서 직원의 TOEIC 평균이 800 점을 넘는 회사는 아마 한두 군데 뿐일 것이다. 일본의 대기업들도 영어만 사용하도록 규정을 바꾼 회사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다. 일본의 최대 인터넷 쇼핑몰 회사인 라쿠텐이 2010년에 회사의 공식 내부 언어는 영어로 한다고 해서 직원들을 쇼크상태로 몰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해 하는 직원들이 많다. 언어에 관한 한 가장 폐쇄적인 나라였던 일본 회사들도 글로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만큼 변하고 있다.

베트남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런 소프트웨어 공학과 영어의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회사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반면에 국내의 상황은 암울하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오늘 현재 베트남이 글로벌에서 가지고 있는 수준을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냥 국내용 숙련공들만 많이 생기는 생태계이다. 필자가 볼 때 20년 전의 상황이나 지금 상황이나 소프트웨어공학 역량이나 영어역량은 변한 것이 없다. 그냥 보호무역적이고 폐쇄적인 상황에서 국내용으로 안주해 왔을 뿐이다. 국내의 온라인 쇼핑몰 중에 외국인이 구매할 수 있는 곳은 없다. 필자가 늘 얘기하듯이 국내에서만 살아가겠다면 식당을 하든, 술집을 하든, 소프트웨어 회사를 하든 참견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식당을 열어 놓고 외국고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변해야 한다.

지난 20년 이상 그랬듯이 지금도 국내에서 정부, 산업계, 학계, 연구소에서 수 많은 탁상공론들이 얘기되고 있다. 아직도 무엇이 핵심인지도 모르고 이론과 용어만 가지고 메뉴만 바꾼 시행착오를 하고 있다. 진정한 분석이 무엇인지 본 적도 없으니 100페이지를 10페이지로 적고 껍데기에 불과한 방법론이나 운운하며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앞으로 영원히 발전할 수도 없고 베트남에게도 점점 더 뒤떨어 질 것이다. 세계에 내 세울만한 소프트웨어는 하나도 없고 외국 대학 수업의 숙제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정부 보조금 받아 생존하며 자화자찬 하면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20년 전이나 신기할 정도로 전혀 변한 것이 없다. 마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베트남이 많은 글로벌 회사들을 고객으로 개발을 하면서 성장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로 살고 있다. 자아도취와 자화자찬이 현재의 국내 상황이다. 그러면서 글로벌 흉내를 낸다고 국내 실정에 맞지도 않는 것을 따라 하려고 하는 것도 2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바로 "아니면 말고"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주워들은 실리콘밸리의 영웅담 얘기는 모든 사람이 빼놓지 않고 한다. 서울 안가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아는 척하는 얘기와 같다.

차라리 가짜 소프트웨어 공학으로 그동안 시행착오 했을 동안에 영어공부라도 했으면 국내 사이트의 가짜 정보 대신에 글로벌 사이트에서 영어로 된 정보를 접하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단순하다. 분석->설계->구현->테스트 이다. 하지만 단순하지만 어렵다. 노래를 잘하려면 음정과 박자를 맞추면 된다는 것과 비슷하다. 단순하지만 혼자서 배우기는 어렵다.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 철학자인 니체가 "세상에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진짜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분야가 소프트웨어 공학분야이다.

적어도 20년 이상을 이런 생태계로 지내면서 이해 집단도 많아져 진짜가 살아가기 어려운 생태계가 되어버렸다. 먼저 개발자들이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는 순간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적어도 20년 이상을 반복해 온 역사에서 배울 것이 있다. 또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 처럼 남에게 이용 당하지 않으려면 가짜로부터의 지적인 자기방어가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에도 이제는 웬만하면 베트남 개발 인력을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 베트남이 SW Outsourcing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도메인 지식도 아니고 영어를 기반으로 인도에게서 배운 소프트웨어 공학 역량이었다. 그 중에서도 계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분석 역량이다. 혹은 Software Requirements Specification(스펙)을 작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인도는 똑같이 미국에게서 배웠다. 베트남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너무 수준 차이가 나는 미국이나 인도보다도 베트남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