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미국의 여류시인 루이즈 글릭(Louise Gluck)이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시인이다. 노벨 문학상이 발표된 후 노벨 재단에서 그녀와 전화 인터뷰를 하려고 미국 동부에 거주 중인 그녀에게 오전 7시경에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때문에 수상자들은 스웨덴에 가지 않고 자기 거주지에서 수상을 한다. 인터뷰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노벨 : 2, 3분 정도 인터뷰할 시간
있습니까?
루이즈 : 나는 지금 모닝 커피를 마셔야
하기 때문에 2분만 시간이 됩니다.
노벨 : 노벨상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루이즈 :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첫째로 드는 생각은 친구가 없어질 거라는 것입니다. 내 친구들은 모두 작가들인데
그런 친구들이 생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케임브리지에 콘도가 하나 있는데 버몬(현재 거주지)에도 집을 하나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내는 일상 생활이 보전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 모든 관심으로 인한 사생활을 침해하는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노벨 :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루이즈 : 초기 작품은 읽지 말고 최신
작품인 “Averno”와 “Faithful and Virtuous Night” 을 읽기 바랍니다.
노벨 : 살아온 경험의 가치가 어떤 사건에
대한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루이즈 : 음. 주제가 너무 큽니다. 그리고 지금 7시 이른 아침입니다.
노벨 : 당신의 작품의 주제가 ……….
(계속 질문하려고 한다)
루이즈 : 2분 지났습니다.
노벨 : 죄송합니다. 충분히 괴롭혔습니다. 축하합니다.
이 인터뷰로 보면 루이즈 글릭에게는 노벨상의 가치가 버몬주에 집을 하나 살 수 있다는 것 이외에는 걱정이 더 많고 그리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모닝커피 마셔야 하니까 2분이 지나서 전화를 중단할 정도로 노벨재단에 대한 배려도 하지 않고 비중도 전혀 두지 않는다. 노벨재단 입장에서는 노벨상을 주었으니까 기뻐서 흥분할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필요도 없는 노벨상을 왜
주었냐는 식으로 다른 걱정이 앞서는 사람도 많다.
회사와 직원의 관계도 비슷할 수 있다. 회사에서 채용해 주었으니까 고마워하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봉건사회적인 사고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대로 산업의 첨단을 걷는
IT 근무자라면 자기의 전문성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이 있어야 하고 그럴 수 있도록 실력을 쌓아야 한다. 즉 봉건시대처럼 회사의 소작농으로 살아가면서 고마워 할 것인가 아니면 실력 있는 전문가로 대등하게 회사가 귀중히 여길 수 밖에 없는
노벨상 수상자가 될 것인가는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IT 전문가로서 돈과 명예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것인가, 자신이 즐기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를 둘 것인가는 인생관의 차이이다. 잘 알려진 박애주의자인
워런 버펫은 거의 100조 달하는 재산을 가지고도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한 네브라스카주의 평범한
집에서 살고 있다. 자동차는 당시 가격이 5만불 정도인 2014년형 캐딜락 XTS를 타고 있다. 그러면서 모든 재산은 계속 기부하고 있다. 반면에 실리콘밸리에서
IPO가 성공할 때 마다 나오는 졸지에 생긴 부자들의 삶의 대부분은 비싼 집, 비싼
차의 추구가 첫번째 하는 행동이다. 과시욕만 제외하면 비싼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그런 행동이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말하려면 인생의 가치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해
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과시욕과 우월감을 자랑하려는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에 불과하다.
불로장생을 찾아 헤맨 진시왕이나 알렉산더 대왕처럼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끝없이 추구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IT와 회사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회사와 직원
모두 잘 인지해야 조화롭게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둘 다 주인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다. 도구에 집착하여 인생을 소비하는 것에 대해 루이즈 글릭은 시집 Faithful and Virtuous Night 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참고로 이 부분은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므로 시의 특성상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둔다.
어느 날 잠에 들면서 깨달았다.
내가 그것의 노예로 살았고 강한 애정을 가졌던 모험이
끝났다는 것을.
과연 사랑으로 끝난 것일까?
내가 추구하던 것들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존재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런 것이 정말로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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